Exhibition Sympos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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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작가와의 대화: 세실 비 에반스
작가와의 대화: 세실 비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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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

2022년 1월 6일 – 4월 10일

개관특별전 «포스트네이처: 친애하는자연에게»는 한국 산업화의 상징인 도시 울산에서 출발한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된 이후 울산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 발전을 유지하기 위해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희생했다. 그리고 여전히 ‘자본’과 ‘질서’는 생태를 집어삼켜 우리의 미래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이렇듯 찬란한 미래를 열망해왔던 우리의 생태는 최근 일상을 산산조각 낸 전염병과 여러 글로벌 위기로 돌아왔다. 제목에서 ‘이후’로 변역되는 ‘포스트’는 뒤에, 다음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포스트네이처: 친애하는자연에게»는 인류와 생태를 더 먼 미래로 확장해 도래할 세계를 상상한다.  «포스트네이처: 친애하는자연에게»는 인류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생태가 아닌 역사와 문화 정치가 얽힌 복잡한 감각을 떠올린다. 이를 통해 관객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보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나누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태적 감수성을 다시 설정하고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다층적 계기를 제공한다.

카미유 앙로
1978 파리 출생, 파리와 뉴욕에서 활동
‹엄청난 피로›, 2013, 단채널 비디오, 13분

카미유 앙로의 대표작 ‹엄청난 피로›는 컴퓨터와 인터넷 창의 친숙한 형태를 사용하여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고, ‘힘의 시선’으로 쓰여진 역사는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 질문한다.

작가는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아티스트 리서치 펠로십 기간 동안 스미소니언 미술기록보관소,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소장품을 촬영할 수 있었다. 대량 학살, 멸종 및 환경 피해와 같은 폭력의 형태를 통해 박물관을 채운 소장품들에서 작가는 인간의 무한하고도 편집증적인 욕망을 엿보았다. 문화사적 관점을 취하는 인류학적 소장품들과 일련의 이미지들은 감각적 비트의 사운드 위에 교차되어 웹브라우저 화면으로 구현된다.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탐욕도 거칠 것 없어 보이는 박물관의 시스템과 인간의 수집 욕구는 이제 디지털 세계와 연결되어 압도적인 데이터 흐름으로 인한 엄청난 피로를 강조한다.

알렉산드라 피리치
1982 부쿠레슈티에서 출생 및 활동
‹테라폼›, 2021, 퍼포먼스 및 설치

‹테라폼›은 6명의 공연자와 청중이 완성하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작가는 1990년대 루마니아에서 유행했던 ‘동양풍’의 실내 디자인에서 착안, 구멍 모양을 가진 새틴 담요로 작은 생태를 상상한다. 작가는 인간이 다른 종과 뒤섞여 살아간다는 이종성(異種性)의 미래적 서사로 상상의 생명들과 이들의 몸짓을 만들어내 어떤 이야기보다 더 픽션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작가가 전시장에 만든 세계에서 우리의 몸은 동물이나 식물의 습성과 제스처를 통해 다양한 역사, 문화적 맥락을 참조한다. 작품에서 세계는 ‘인간’이 정의한 생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와 연대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함께 토대를 바꾸어 가는 공동의 세계를 의미한다.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삶과 작품이 그리는 이상적인 세계 사이에서 방향을 감각하고, 유동적이고 적극적인 교환, 즉 자리바꿈과 상호침투가 새로운 세계의 질서가 된다.

정 보
1974 베이징 출생, 란타우섬에서 활동
‹양치류 식물 1, 4›, 2016 – 현재 진행 중, 단채널 비디오

‹생존 매뉴얼›, 2015–현재 진행 중, 18.4×13cm, 상하이 야생 식용 식물을 손으로 그린 것

정보는 다양한 종(種)이 공명할 수 있도록 작업하는 작가다. 그는 소외된 공동체와 연약한 식물의 관점에서 과거를 탐구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작가는 잡초 정원, 살아있는 슬로건, 에코 퀴어 필름과 같이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주고받는 교환 활동을 관객에게 목격시킨다. 작업은 대만 내 식물 종의 서사를 역사와 정치적 쟁점으로 긴밀히 연결 짓는다. 대만의 양치류 식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던 일본군이 이를 대체 식량으로 삼으며 서식하기 시작했다. 특정한 식물 종이 다수 분포되고, 외래식물이 귀화하게 된 이면에는 이처럼 인간 중심주의의 자연관과 세계관이 자리함을 시사한다. 더불어 작가는 인간 예외주의를 넘어서 사람과 식물의 공동체를 설정하고 물리적 친밀감을 묘사한다. 몸이 환경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동적인 유기체라는 생각을 반영해 정체성과 성별 범주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생태와 인간 성별의 관계를 새롭게 재해석한다. 전시된 드로잉과 영화 시리즈는 지형과 영토 간의 복잡한 관계와 국가, 토지 및 자연 정복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일방향적이고, 둘로 가르기 위한 이종 규범적 노력이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히토 슈타이얼
1966 뮌헨 출생, 베를린에서 활동
‹이것은 미래다›, 2019, 가변설치, 16분

<이것은 미래다>는 히토 슈타이얼의 최신작 중 대표작으로 9개의 프로젝션 스크린이 포함된 대형 미디어 설치작업이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되었고, 국내 전시로는 이번 2021년 울산시립미술관 개관전이 처음이다. 메인 영상에는 전지전능한 시점의 나레이션과 터키의 한 감옥에 수감되어 간수의 감시를 피해 약용 식물을 키우려고 하는 헤자(Heja)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작업의 일부인 멀티 채널 비디오 '파워 플랜트'는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 피어날 가상의 식물이미지를 자동적으로 생성해 보여준다. 이 화면 속 디지털 식물들은 '소셜미디어 중독 치료', '증오발언(hate speech)에 침묵하는 증상 치유', '독재자 독살' 등의 라틴어 이름을 갖고 공사현장에서 쓰는 가설물인 비계(飛階)를 줄기 삼아 자라난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이것이 미래이다'인 이유는, 영상에 나오는 나래이션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유튜브 및 각종 빅데이터 기반의 콘텐츠 제공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즐기며, 우리는 알고리즘이 인도하는대로 영상을 보고, 알고리즘은 심지어 우리가 약 1초 후 무엇을 원할지 예측해버린다. 또 그 예측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히토 슈타이얼은 네트워크가 항상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예측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빅데이터 기반의 예측 알고리즘을 운영하는 디지털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겨냥한다.

르엉싹 아누왓위몬
1975 방콕에서 출생 및 활동
‹환생 (호페아 창갈 나무와 신도라 와리키 나무)›, 2019, 유리, 스테인레스 스틸 및 아카이브 된 종이, 가변크기

멸종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멸종 위기인 생태계를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탐구하는 것은 르엉싹 아누왓위몬 작업의 출발점이다. <환생>은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싱가포르의 고유 수목인 '호페아 창갈(Hopea sangal)'과 '신도라 와리키(Sindora wallichii)'에 대해 다룬 다학제간 예술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현장 조사를 통해 이 두 종의 나무에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2002년에 잘려진 호페아 창갈 나무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잘려진 거대한 신도라 와리키 나무의 역사를 탐구한다. 작가가 흙으로 구운 나무 조각 아래 유리 케이스에는 멸종된 나무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는, 현장에서 수집하고 문서화한 자료들을 엮어 놓았다. 작가는 폭 넓은 동식물을 탐구함으로써 주류 국가가 만드는 생태적 내러티브를 비판하고, 자본에 의해 자연환경이 포섭됨에 따라 심화되는 모순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창이 나무로 불리기도 했던 이 나무는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2002년 10월 창이 지역을 조사하던 탐사팀에 의해 수령이 최소 150년으로 추정되는 창갈 나무 한 그루가 극적으로 발견 되었다. 그러나 나무가 흰개미에 감염되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쪽으로 기울어져 공공의 안전에 위협을 가한다는 이유로 잘려졌다.
세바스티안 디아스 모랄레스
1975 코모도로 리바다비아 출생,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먼지와 대화›, 2018–19, 가변설치
#1 Candle, 2018, 20분
#2 Into a Silent World (Drummer) | #6 Into a Silent World (Spinning Car), 2018–19, 12분
#3 Multiverse, 2018, 10분
#4 Route 26, 2018, 10분
#5 Multiverse (Globe), 2018, 10분
#7 Sunrise, 2018, 1시간
#8 Talk with Dust, 2018, 16분

<먼지와의 대화>는 다양한 크기의 화면으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건조한 풍경을 보여준다. 6개의 비디오 채널에서 우리는 천천히 타는 양초, 즉흥적인 드럼 연주, 폭발의 장면, 사막에서 끝없이 움직이는 자동차 등을 볼 수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풍경들은 우리의 기억 그리고 경험과 서로 협업하며 변형된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기술을 통해 구현한 작가의 아르헨티나 풍경은 사실 정확한 시간대를 구별할 수 없다. 여섯 풍경 속 먼지들은 제각기 소용돌이치고, 분해되기도 하고, 동시에 뭉쳐진다. 그의 추상적인 시나리오와 비디오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어 버린다. <먼지와의 대화>로 포괄되는 6개의 화면과 각 장면들을 감상하는 첫번째 단계는 '다양한 풍경'을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시간의 '간격(interval)'을 두고 유사한 풍경을 함께 감상하며 그리고 마지막은 '기억의 형상'을 찾는 일이다. 한 공간 안에 6개의 화면은 유사한 풍경과 움직임을 통해 그들 자신의 비동기적 서사를 형성하면서도 환상이 머무는 ‘풍경 저편’에 정신적 영역으로 발견된다.

백정기
1981 서울에서 출생 및 활동
‹촛불발전기: 부화기›, 2021, 유정란, 방열판, 펠티어 소자, 유리, 플라스틱(3D 프린트), 스테인레스 스틸, 목재, 타이머, 온도 컨트롤러, 혼합 재료, 가변크기

‹퓨저›, 2021, 스테인레스 스틸 진공 챔버, 오일 확산 펌프, 로터리 펌프, 열교환기, 압축기, 수소, 플라스틱(3D프린트), 혼합 재료, 150×120×180cm

백정기 작가는 동양에서 발명되었던 대부분의 과학기기들이 실용적인 용도가 분명한 동시에 아름다운 장식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작품에서 발견되는 장식들은 기기를 통해 이루려는 과업에 대한 의미와 자연적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가 여기서 주목한 점은 과학과 주술적 장식이 오묘하게 뒤섞여 있는 상태 그 자체다. 기능과 실용성 그리고 그 기기가 가진 목적성에 부합하는 주술적 장식까지, 현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과학기기들과는 사뭇 다른 생소한 모습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박물관과 유적지를 방문하며 수집했던 유물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마치 주술사(shaman)처럼 다양한 주술적 장식을 3D 프린터로 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현대의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핵 융합기 ‹퓨저(Fusor)›를 만들었다. 이 핵융합기를 정성스럽게 두발로 받치고 있는 용, 냉각기를 더욱 차갑게 유지시는 빙열문 등은 다양한 주술적 요소로 핵융합로를 장식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의 폐쇄적 관계를 에너지의 발생과 흐름 그리고 탄생이라는 인과적 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확장된 사고체계를 제시한다.

퓨저는 전기장을 사용하여 이온을 핵융합 조건에서 가열하는 장치다. 축구공 모양의 진공 철제 용기 안에 두 겹의 구체(球體) 철망 형태의 전극을 설치하고 연료인 중수소(deuterium·수소의 동위원소)를 공급할 호스를 연결한다. 연료 주입과 함께 1만 볼트 이상의 고압 전기를 통하면 진공 용기 안에서 수소 원자가 융합하면서 강한 빛과 열을 발산한다. 이 과정에서 중성자가 부산물로 생성될 뿐 방사능 폐기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Is of: Fall›은 가을의 단풍 풍경을 담은 사진 작업이다. 가을 단풍잎들을 수집하고 각종 장치들을 동원해 잎사귀에서 추출한 색소로 사진을 출력하였다. 이는 일반적으로 안료를 만드는 방법과 매우 다르다. 작가는 자신이 필요한 색을 얻기 위해 용매와 분리기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다시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또한 식물의 원 색채 그대로 인쇄할 수 있도록 프린터 개조는 물론 특정 부품까지 개발했다. 이렇게 프린트된 사진은 출력이 된 순간부터 전시기간 내내 산소와 빛의 영향으로 점점 색이 바래진다. 사진은 단풍잎이 땅에 떨어진 낙엽이 되는 자연의 원래 성질과 매우 닮아 있다. 작품은 정지된 피사체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자연이 가진 변화의 속성을 함께 띄는 것이다. 즉 자연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함께 자연의 불가항력이 한 장의 사진에 오롯이 담겨 있다.

메이로 고이즈미
1976 군마현 출생, 요코하마에서 활동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 2021, VR/AR 기술 활용

그리스 비극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의 이전 작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Bound›(2019)와 연결되는 이 VR 작품은 팬데믹 기간 동안 해외에서 노동자로,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을 격리와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되는 미래의 비전에 겹쳐 놓는다. 팬데믹으로 격리가 되거나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진 상황에 갈 곳이 없는 이들의 불안은 VR 공간에서 집단의 경험으로 펼쳐진다. 이 연극 작품은 우리 모두가 타인과의 접촉이 제한되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해야 하는 전염병의 경험을 넘어 우리가 이미지를 인지하고 시각화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메이로가 선택한 VR의 기술적 시현은 관념적인 기억 속에 머물러 있거나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어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전파에 담아 송신하고, 때로는 현재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이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연결한다. 따라서 관객은 현실에서 실제 존재했던 발화가 가상 환경으로 던져졌음을 재구성할 수 있다.

장종완
1983 울산 출생, 서울에서 활동
‹슈가캔디마운틴›, 2021, 777.3×387.8cm

장종완이 줄곧 이야기해온 이기적이고 인간 중심적인현대사회는 고전적인 회화의 표면 위를 가로질러 아이러니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울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작가의 경험은 장종완 작업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작가가 기억하는 울산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이상향의 장소이다. 작가는 이러한 유토피아 혹은 천국으로 대변되는 장소와 구원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그리기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비틀어낸다. 전시장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작가의 이번 거대한 페인팅은 기념비라는 형태를 취해 집단적 기억의 표상과 회화의 형식 사이를 고찰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장종완은 가장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모아 놓은 이른바 ‘달력 그림’과 같은 장소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에서 나아가 작품이 전시 공간에서 새로운 영토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정한다.

산업화의 요람이라는 별칭답게 울산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이었다. 타 도시와는 비교가 안 되게 시민들의 평균소득이 높았고 많은 이들이 거대한 기업의 요람 속에서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리며 안락하게 살았다. 가끔 거리에는 요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전투경찰들과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나는 그 모습을 전쟁영화 보듯 묘한 흥분을 느끼며 바라보았고, 같은 반 친구는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자기 아버지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 작가노트
타카야마 아키라
1969 사이타마현에서 출생 및 활동
‹맥도날드 라디오 유니버시티›, 2022, 프로그램

‹맥도날드 라디오 유니버시티›는 공연 기획자이자 아티스트인 타카야마 아키라가 2017년 3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다. 작가는 미술관과 극장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자고 이야기하면서도 대부분 그런 입장을 단순히 전시하거나 수행하는 데 머무는 반면, 글로벌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맥도날드는 이민자들과 피난민들을 고객이자 직원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공존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음을 흥미롭게 여긴다. 이러한 생각은 난민들을 ‘교수’로 초빙해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강의를 연다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작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테네까지 ‹맥도날드 라디오 유니버시티›의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유러피안 싱크벨트(European Thinkbelt)’를 고안한다. 이 싱크벨트는 폐쇄된 국경을 넘어 도시를 연결하고, 도자기 파편처럼 부서진 취약한 계층의 ‘생각’을 ‘벨트’로 연결하는 극장 프로젝트로 발전한다. 이번 작업은 울산으로 이어져 ‘아시안 싱크벨트(Asian Thinkbelt)’를 배양하는 데에 뿌리 역할을 수행한다.

글로벌 기업 맥도날드는 무료 전기, Wi-Fi, 회의 및 모임의 장소이자 은신처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며, 다문화/다인종의 공존을 실현한다.
왕 홍카이
1971 후웨이 출생, 비엔나와 타이완에서 활동
‹보롬›, 멀티미디어 및 사운드 설치, 2020

왕 홍카이의 작업은 역사의 무거움 속에서 요동치는 식민주의나 제국주의, 디아스포라적 생태를 주제로 다룬다.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의 작업은 생생한 ‘경험’과 기록된 ‘역사’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보롬›은 재일한국인 시인 김시종이 제주 4.3 사건에 연루됨을 계기로 1949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탈출한 여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바람의 움직임을 생동감 넘치는 레퍼토리로 엮어낸다. 우리를 이끄는 이 바람의 이야기는 역사, 신화, 풍경, 지질학, 위험, 피난처, 존재, 사물 등 다양한 주제가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바람은 경계를 만들지 못하고 다른 것과 뒤섞이거나 다른 것을 침범한다. 바람이 보여주는 역사는 무엇을 의미할 수 있으며, 그것은 오늘날 어떻게 그 자체로 명료화될 수 있을지 묻는다. 단단히 디딜 수 있는 자리가 없는 바람의 땅에서 역사와 비극적 지리학을 비판적으로 엮어 다른 시공간을 상상한다.

김아영
1979 서울에서 출생 및 활동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2019, 2채널 비디오 설치, 23분 4초

이 작품은 전작인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의 후속편이다. 2018년 예맨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온 예멘 이주민들이 크게 이슈화가 되었던 사건에서 작가는 영감을 받았다. 영상 속에서 광물이자 데이터 클러스터인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이주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페트라는 입국심사, 생체통제 등 21세기를 살아가는 이주민들이 겪을 법한 모든 고통의 과정을 직접 감내한다. 흔히 외부에서 온 이민자들은 바이러스와 같은 이질적 존재로 여겨지곤 하는데, 이러한 바이러스적 존재로 인해 기존의 면역 시스템은 이상이 생기게 된다. 이 작업은 바로 이러한 외부 이민자로 인한 이상면역반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기존의 유기체에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 오염된 외부물질로 보일 수 있는 이민자의 존재가 사실은 유기체의 생존에 필수적이며, 이러한 혼종화 자체가 생명체의 지속가능성에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이러한 깨달음은 곧, 정주자와 이민자, 내부자와 침입자 사이의 경계가 사실은 견고하지 않으며 오히려 유동적인 것임을 말해준다.

얀 레이
1965 허베이 출생, 베이징에서 활동
‹레버리 리셋›, 2016–2017, 348.5×Ø480.6cm

얀 레이는 기술 매체를 사용하여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작품의 구심점을 글로벌과 로컬, 중심과 주변, 권력자와 비권력자 간의 역학관계에 맞추고, 다양한 이미지의 편집을 통한 ‘관계성의 상호보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 ‹레버리 리셋›은 컴퓨터 시스템과 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이미지의 합성과 교차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이다. 대형 크기의 설치 작업은 마치 거대한 정보 저장소로 활용되며, 각 화면에서는 서로 무관한 이미지들이 재생된다. 80개의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원형으로 선회하는 이 구조물은 하나의 시스템 네트워크로 묶여 끊임없이 이미지를 방출하는데, 이는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통해 직접 관람자의 휴대전화와 연동될 수 있다. 사용자와 연결된 후, 이미지 송출은 3단계로 진행되며 일종의 서사를 제시한다. 본래 이미지, 원색으로 평면화된 이미지, 설명문으로 구성된 영상들이 단계적으로 보여지고, 이 정보들은 다시 분산된 네트워크에 저장된다. 이러한 일련의 프로세스는 제목 그대로 백일몽(Rêverie), 환상적인 이미지의 시각적 환영을 선사한다.

슈리 칭
1954 타이난 출생, 파리에서 활동
‹UKI, 바이러스 창궐›, 2018, 3채널 비디오 설치

파격적인 공상과학 영화였던 ‹I.K.U.›(2000)의 속편으로 구상된 ‹UKI, 바이러스 창궐(UKI, virus rising)›(2018)은 두 폭 제단화(diptych) 형식으로 된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테크놀로지 시대의 신체와 젠더에 대한 작가의 논의를 한층 더 심화시킨다. 주인공인 암호 기술자 레이코는 게놈 주식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뒤 인터넷 암호, 트위터,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충돌하고 부서지는 E-trashville(가상 쓰레기 도시)에 버려진다. 이곳에는 난민과 원주민 그리고 노동자들이 어울려 거주하고 있다. 레이코는 하드 드라이브로 된 자신의 신체 체계를 재부팅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재구성을 통해 유기적인 UKI 바이러스가 된다. 인터넷 노마드이자 사이버 페미니스트인 작가는 젠더 구분이 희미해진 사이버 세계에서의 민족 다양성과 성별의 이동성을 주요 주제로 한다.

‹다음으로 가는 정원›, 2021–22, 폐차에 버섯이 자라는 혼합 생태

오늘날 우리가 만든 풍경은 사람들이 생태를 정복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숲속에서 산책하고 버섯을 찾아 채집하며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느린 철학을 품어 생태를 새롭게 감각할 수 있다. 하루에 60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임을 증명한다. 대규모 공장 생산에서 안전 기능이 정밀하게 테스트되고, 테스트로 사용된 자동차는 시장에 유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통해 분류된다.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을 이 활용 가능한 폐차는 ‘테크노자본주의의 토템’이 될 것이다. 자동차 유물에 대한 경외심 속에서 우리는 속도와 효율성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고 버섯 사냥을 시작한다. 금속 부품 사이에서 탄력 있는 버섯 꽃이 피고, 균사체의 파편은 가속의 이미지와 뒤섞여 협력하는 집단의 생존 이야기와 존재하려고 애쓰는 생태로 안내한다.

우리는 경제적, 생태적 파괴에도 불구하고 삶의 문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 
진보와 파멸은 우리에게 협동적이고 연대하는 생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버섯의 생태와 버섯 채집에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이 행위는 우리를 구원하지 않지만 우리의 상상력을 열 수 있습니다.
— 안나 로웬하우프트 칭(Anna Lowenhaupt Tsing)
『세상 끝의 버섯 : 자본주의 폐허에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백남준
1932 서울 출생 - 2006 마이애미, 서울, 뒤셀도르프, 뉴욕에서 활동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1992–1994, 800×554×465cm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는 실내에 흙으로 땅을 조성해서 살아있는 나무를 심고, 지면과 나뭇가지 주변 군데군데에 23대의 텔레비전을 설치한 작업이다. 마치 새장처럼 설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에서는 일제히 존 케이지의 전위적 예술공연 이미지와 파편화된 장면들이 쉴 새 없이 송출되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케이지(cage)의 숲’인 이유는 백남준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 때, 자신과 예술적으로 크게 영향을 주고받은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그의 이름과 동일한 발음의 ‘새장(cage)’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자연 속에 기술매체인 텔레비전이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했다. 백남준이 소재로 선택한 자연과 텔레비전이라는 기계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변화무쌍함’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생성과 죽음 사이를 가로지르며 역동적으로 존재하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백남준 작업의 브라운관에서는 쉴새없이 불연속적인 이미지들이 무작위로 송출되며 전혀 다른 풍경들이 융합되어 나타난다.

세실 비 에반스
1983 클리블랜드 출생, 런던에서 활동
‹퓨처 어댑테이션›, 2021–22, 9채널 비디오 설치

<퓨처 어댑테이션(Future Adaptation)>은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한 영상 설치 작품이다. 고전 발레 명작인 <지젤(Giselle)>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기후 변화로 황폐화된 도시를 떠나 자연 안으로 이주하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지젤과 그녀의 친구들은 지역에 자생하는 야생 미생물을 이용해 '슈퍼-박테리움'이라는 증류소를 운영한다. 실제로 작품 전면의 스크린에 걸린 식물들과 연결된 ‘미생물 연료 전지’는 전시 기간 동안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것은 삶과 죽음에서 자유롭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의 프로토타입 모델이 된다. 또한 이 미생물은 작품 안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으로 은유된다. 이는 원작 <지젤>에서 경멸받는 여성들의 집단이자 영혼 무리로 '윌리'로 묘사되지만 작품에서는 반짝이고 변화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은 기후변화로 인해 다변화 되는 환경과 가속화된 경제 논리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로서 ‘미래에 대한 적응’을 서술한다. 

박테리아의 단수, 슈퍼박테리아의 단일 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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